이 글은 지난 4년간 시선을 오름차순으로 정리한 글이다.
1. 사회생활 시작
2019년 9월 고등학생 신분의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 반으로 첫 출근을 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마인드로 무장한 나는 말걸지마십쇼로 바뀌기까지 3개월이면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루종일 서버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고, 고딩 깍뚜기 온보딩용 토이프로젝트가 잘나왔다며 서비스하는 모습까지 내가 기대하던 회사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2. 난가?
한참 시키는 일만 처리하고 살다가 갑자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 순간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누구에게 뭘 기대한 거지?”
“난 왜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고 있지?”
수개월 동안은 나를 원인으로 가정하기도 했었다.
“나는 왜 그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야?”
“내가 뭘 잘못해서 저 사람은 나와의 협업에 집중하지 못할까?”
그러다가 생각이 너무 깊어졌다. “난 왜 살지?” 라는 질문을 3개월간 안고 살았다. 그런 철학적 사고를 해본 적 없는 내가 그런 질문에 답을 얻을 일은 만무했다.
3. 마음속 의존성 제거
문득 필요하지 않은 질문들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았다. 더 발전해야 할 시간에 필요하지 않은 질문에 답을 찾고 있었다. 개발자는 응당 문제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회사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보다 더 빨리 일을 끝내고, 소통이나 협업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전같으면 동료에게 마음과 믿음을 주고 한 명씩 회사를 떠날 때마다 크게 흔들렸으나, 이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목표와 문제에 집중하니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4. 회사의 위기
나는 나름대로 불필요한 의존성을 제거했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흔들리기 전 지까지 말이다.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개발팀과 임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에 갔다. 팀장님이 퇴사를 할때만 해도 큰 걱정이 없던 내가 그때는 두려웠다. 산업기능요원을 한참 하고있었을때라 더 그랬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사무실이 텅텅 빈 모습을 보이고,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개발자로서 그리고 이직에대한 자신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때 위안삼아 한다는것이 동료와 함께 하는 토이프로젝트였다. Pramda 이것을 얼마나 많은 한숨을 뱉으며 만들었는지 모른다.
5. 운전대를 잡은 개발팀
회사에서 가장 길게 고민해본것은 소통이었다. 아마 모두가 같지 않을까? 온라인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개발자라면 대부분 기획자, 디자이너와 소통하는일이 잦을것이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오가는 소통을 모두 문서로 기록하고 버저닝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이 의사결정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근본적인 목표를 향한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도와줄것이라 예상했다. 이게 한방에 되면 인생이 아니다. 기획, 디자이너들은 모두 내가 자신들의 일과 의사결정에 침범한다고 생각한것같았다. 리더를 통해 기획, 디자인팀에서 나의 의사소통방식이 부담스럽다는 피드백이 들어왔을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 애먹던중 회사에 개발팀만 남게 된것이었다.
개발팀의 주 소통 대상은 CEO, Co-founder 혹은 각 부서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기획, 디자인을 할리가 없었으니 사업적 목표만 공유받고 나머진 개발자들끼리 하게되었다.
개발속도가 눈에띄게 빨라졌다. 기획자,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시간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나는 이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빠르게 성과가 나타나서 그런것일까? 이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내가 목표설정과 달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것이다. 퇴근해서 씻고 다시 출근하고, 주말에도 일할 정도였으니 이때의 일하는 재미는 정말 끝내줬다.
그렇게 순식간에 4개의 프로젝트를 완성, 인프라 개선, 회사의 구조적 문제를 시각화 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6. 드디어 이직
산업기능요원이 끝났다. 현역이라 그런지 참으로 길었다.
이제는 이직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나처럼 개같이 일하는놈이 몇 안될꺼라는 확신이 들었기때문이다. 총 40개월 중 15개월정도를 병신으로, 25개월정도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3주정도 이직을 시도했고, 2번의 면접을 보고 이직에 성공했다. 떠날때가 되니 참 아쉬운것들도 많아지더라.
7. 도키도키 판교입성
잔뜩 긴장한채로 첫출근을 했다. 모두 나를 밝게 받아주셨고 매우 좋은 첫인상을 받았다.
빠르게 적응하는법이 뭘까에 대해 고민했던적이 있다. 내가 내린 답은 상태를 내 머릿속에 정리하는것이었다. 난 첫날부터 일을 달라고 했고, 하기싫은일은 모두 나한테 달라고 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상태를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름 잘 작용했는지 내 머리에도 빠르게 도메인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리더로부터 동료들의 평가가 좋다고 전해들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감사한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열심히하려 노력했다. 퇴근후에도 개선방향을 고민하고 주말에도 코드창을 보고있었다.
8. 도망가버린 나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는건 정말 큰 행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가 나와 잘 맞는다는건 아니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이 있다. 바로 근본과 이해이다. cs나 코드, 개발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이름을 쓰는가? 그렇다면 그게 정말 수평적 구조를 가져오는가?
에자일이 좋은가? 그렇다면 그게 정말 팀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가?
코드리뷰가 좋은가? 그렇다면 그게 정말 팀원들의 코드를 더 좋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들을 타고 타고 내려가서 근본적인 이유에 닿을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런 근본적 이유와 사고를 구성원이 모두 이해해서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른 잘나가는 회사의것을 적용한다고 갑자기 일이 잘풀리는꼴은 본적이 없다.
저런걸 줏어다 쓴 회사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누가 회사 망하라고 저런걸 들고오겠나? 정말 큰 문제는 문제의식에 있다. 구성원내에 위의 질문들을 던지면서 문제의식을 가지는 몇명은 있어야한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회사에 맞는,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야한다. 작은 회사에서는 작은 회사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회사에서 들은 말중에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다.
“다른 큰 회사(유니콘 혹은 대기업)에서는 절대 그렇게 안해요.”
ㅈ만한 회사 다니면서 저런말 들으면 정말 기가찬다.
(절대 내가 갔던 회사에서 그랬다는게 아니다. 오해하지 말길.)
여튼 그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는지 허리는 곧 부서질것같았고, 아토피는 심해져서 번지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갔다. 그냥 핑계였던것같다. 난 내가 만들어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9. 한심해진 나
난 지금까지 백수상태이다. (23년 8월 30일 기준)
왜인지는 모르겟으나 이런게 번아웃일까 싶을정도로 힘빠지는 날들을 보내고있다.
개인사업자를 내보고싶어서 바짝 개발하고 상품도 준비했지만 그것도 참 행정 시간이 오래걸리더라..
집에서 하루종일 노래들으면서 누워만 있어도 시간이 이렇게 빨리간다는걸 처음 알았다.
10. 미션을 찾아서
돈이 떨어지니 이직의 필요성이 생겼다. 번아웃이 아니고 귀찮았던걸까?
이번 이직은 회사를 찾아서 가기보다 재미를 찾아서 가는것이 목표다.
쉬는동안 사진을 찍고 다녔다. 이렇게 재미있게 사진찍는건 처음이다.